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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한국사의이해

[한국사 : 고려] 키워드 정리 및 시험 예상 문제

고려

호족 연맹체 => 호족 통합이 중요

건국 의의1, 민족 통일 심화 : 후삼국 통일 및 발해/고구려 계승

건국 의의2, 지방 호족 세력의 중앙 정계 진출

 

태조 왕건

호족 포용 정책 : 결혼, 사성, 공인 책봉, 역분전 지급, 취민 유도 // 사심관, 기인 제도를 통해 견제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

- 불교 중시 - 쟁탈 금지 - 왕위는 적자적손이되 인망 있는 자 - 거란 배격 - 서경 중시 - 연등회, 팔관회 중시 - 민심 얻기

- 전라도 배제 - 기록 공평히 - 널리 보아라

 

태조 왕건 이후 결혼 정책으로 인해 혼란기 도래

(혜종 - 정종)

 

광종

호족 세력 견제 : 노비 안건법, 과거제, 호족 세력 숙청

왕권 강화 : 황제국가, 불교계 통합

 

경종 

경제 개편 : 전시과 시행

 

성종 : 통치체제 정비 

유교 정치 시작

과거 합격자 등용 (신라 6두품 출신 유학자들) but, 음서 존재하여 조선시대처럼 완전 공평한 것은 아니였음, 귀족 사회의 전제, 폐쇄성 O

고려는 귀족 사회이면서 관료제 사회였다

정치와 종교 분리 : 정치 이념 = 유교, 종교 = 불교

지방 12목 : 지방 최초 수령 파견

중앙 통치 조직 (2성 6부), 지방 행정 체제(5도 양계, 도호부, 주군,속군, 주현,속현, 향,부곡,소, 향리) 기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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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정치 및 사회

- 사유지 ㅇㅈ

  역분전 - 개국 공신에게 지급

  전시과 시행 - 수조율 10%

  공음전 : 일부 특권, 세습 O

 

신분제가 신라보다는 개방적임

호족-문벌귀족-무신정권-신진사대부

 

화폐 사용, 수공업, 상업 발달, 벽란도-국제무역항

 

호족 => 문벌 귀족

- 5품 이상의 고위 관직자, 3세대 이상 배출한 가문

- 음서제 - 폐쇄적 통혼권 : 다른 가문의 진입 차단 - 월등한 급여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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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vs 거란 : 요 vs 송 

고려 초기

- 후백제와의 경쟁으로 초기 거란과 우호

   거란의 발해 정복

- 고려, 중원(후당, 후진, 송) 국가 사이 우호 : 거란 견제

- 거란과 대립 노골화 

- 북진 정책 

   발해 유민 수용

 

--- 거란의 요통 진출 = 고려, 송의 연계 차단 ----------------

거란의 압록강 진출, 고려의 여진 축출

- 고려 거란 1차 전쟁

   당시, 고려의 조정 : 항복, 할지론

   서희의 외교담판 : 강동 6주 획득, 거란과의 사대주의, 여진 공략

- 고려 거란 2차 전쟁

   원인 = 강조의 정변 : 목종 폐위, 현종 즉위

   개경 함락, 현종 나주 피난 & 친조 약속 후 퇴각

   양구 등 퇴각 거란군 공격

 

but, 고려가 친조 약속 수행 X

거란 = 약속 이행 촉구 및 강동 6주 요구

- 고려 거란 3차 전쟁

   소배압 10만 대군, 강감찬 귀주 대첩 = 거란 궤멸

 

동북아 세력 균형

고려/거란/송

금 건국 후 송, 고려와 적극 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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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진 (금)

초기 :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대우

성장 : 고려, 별무반 창설 (for, 부족한 기동력)

          여진 정벌, 동북 9성 축조

금 건국 후 거란 정복

고려에 군신 관계 요구하자 이자겸, 척준경의 주장에 따라 사대관계 수립

 

고려 사회 동요 

1. 이자겸의 난 : 문벌 귀족 vs 왕권

- 이자겸의 권력 독점 : 왕실 외척 세력

- 인종의 왕권 회복 시도 

- 이자겸 몰락

2. 묘청의 난 : 서경 출신 관려 vs 개경 출신 문벌 귀족

- 서경파 : 서경 천도, 북진정책 - 금 정벌

- 개경파(김부식) : 권력 상실 불안, 서경 천도 반대

서경 천도 좌절 => 묘청의 난

 

=> 문벌 귀족 시대의 끝

무신의 난, 무신 정권 시대

문벌 귀족들의 분열과 김돈중의 정중부 모욕, 대장군 이소응 모욕사건 => 무신들의 난

정중부-경대승-이의민 => 최충헌-최우-최항-최의 => 김준/유경 => 임연-임유무 => 해체

        민란의 확대                    만적의 난 삼별초 조직                     고종            원종 / 몽고와 부마국가

 

무신 집권기, 왕실/귀족/불교사원으로 재화 집중, 농촌 경제 파탄 (농빈 - 노비/도적)

민란의 의의 : 신분질서 재편의 신호탄 // 노비들의 신분해방운동, 삼권 분립 의식

 

몽고(원)의 팽창과 삼별초

- 칭기스칸의 몽고 통일 후 몽골의 침입

- 최씨 정권의 강화도 천도 : 항전 의지

but 몰락, 고려 항복 => 개경 환도

삼별초 = 항복 거부 후 진도, 제주로

but 대몽항쟁 결국 실패

 

고려, 몽고 전쟁의 의의

몽고의 초기 목표인 고려 복속에서 요구 완화됨

고려 국왕의 친조 -> 고려 태자의 입조

개경으로 환도 -> 개경으로 환도, 기한 규정 X

+ 원의 간섭 하에나마 독립국 유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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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 고려 정치 굴절

- 고려 일부 지역 직할령

- 고려 지위 강등 : 부마국/정동행성 및 감시관

- 요구 : 일본 원정 시 동원, 징발 : 궁녀 환관

 

부원 세력 등장 => 기황후, 기철

 

고려의 개혁 운동

공민왕의 개혁 : 홍건적의 난으로 원 세력 약화 및 공민왕의 개혁의지

- 반원 정책 : 정동행성 폐지, 부원 세력 숙청, 쌍성 총관부 회복

- 권문세족 견제 : 신돈 등용, 전민변정도감 설치, 관료집단 육성

but, 공민왕 살해, 신돈 처형으로 실패

 

무신의 몰락, 신진 사대부 등장 

중하급 관리로 성리학 이념을 지님

대부분 향리 출신이며 과거, 군공으로 관직 획득

중소 지주, 자영농 

친명파

- 온건파 신진사대부 : 고려 내 개혁  ex) 이색, 정몽주 

- 급진파 신진사대부 : 왕조 교체 ex) 이성계, 정도전

 

나만의 전체 고려의 흐름

호족 통합기 - 광종, 성종

과거제 시행으로 인한 문벌귀족 형성

고려-거란 전쟁 : 고려 승 : 동아시아 3세력

금 건국 및 이자겸, 묘청의 난

문벌 => 무신정권기 - 삼별초, 만적의 난, 몽고(원)

몽고의 부마국, 부원세력 등장

원 간섭기 - 공민왕과 신돈

신진사대부 등장 - 온건파/급진파

 

기출

- 공민왕의 개혁정치

당시, 원 간섭기로 기황후의 힘을 업은 기철 등의 부원 세력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몽고 세력 약화와 함께 공민왕은 개혁의지를 불태웠다.

부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폐지, 쌍성 총관부를 다시 되찾았으며

신돈을 등용하고 전민 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들을 견제하였다.

하지만 문벌 귀족들의 모함으로 신돈이 처형당하고 본인의 살해로 인해 개혁정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 묘청의 난

묘청 등의 서경파 신진 관리들은 서경으로의 천도와 북진정책을 주장하였다

이는 개경파들의 세력 약화를 위한 의도였고 실제로 거의 실행될 수 있었으나, 

개경파의 강한 반대로 실패하게 되고 묘청은 난을 일으킨다. 하지만 제압되어 실패로 돌아간다.

 

- 급진파 사대부

신진 사대부의 등장 후 이들은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게 된다

온건파는 고려 내에서 전시과의 모순 등을 고쳐나가야한다고 생각하였던 반면

급진파는 토지 재분배를 바탕으로 뿌리부터 고쳐가야한다고 생각하였고 왕조의 교체를 바라보았던 신진사대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