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동북아시아 정세
- 활발한 교역
명
몽고와 왜의 침략
일본
영토 확보 전쟁 중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임진왜란 원인
- 일본 무장들의 공명성
- 경제적 이익
- 반 히데요시 정권의 군사, 경제적 기반 약화
=> 큐수, 나고야성 축성하며 전쟁 준비
당시 조선은?
- 기병 중심
- 정예병 양성 = 제승방략 : 초동조치를 지방군이 하면 정예군인 경험 많은 중앙군 파견
- 자전자수 : 자신의 지역은 자기가 책임짐
삼포왜란-> 을묘왜변 -> 니탕개의 난:여진고려 => 임진왜란
니탕개의 난
여진의 조선 침략 : 당시 기마병 위주 => 우리의 주적 = 기마병
조선의 대응
- 평안도 북방 = 건주여진(누르하치 세력 팽창) 정세 주시
- 함경도 북방 = 적극적 군사 대응
녹둔두 전투, 시전부락 전투에서 조선의 승
임진왜란
임진왜란 초기 (1592.04-1593.04)
강화교섭기 (1593.05-1596.12)
정유재란기 (1598)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북상
- 충주전투, 패
조선의 기병전술 << 일본의 단병전술+조총
- 한성, 평양성 함락
조정의 대응
- 선조 : 한성 - 평양 - 의주(도망)
- 8도 지방군 동원 : 자전자수 => 통합 작전
- 명군 파병요청
명군의 참전 이유
- 일본군의 조선 영토 내 저지
- 일군의 신속한 북상에 의구심 확인
- 즉각적 대규모 파병군 제공 X, 선발대 투입
=> 추후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 전투를 통해 탈환에 성공함
조선의 활약
- 관군 재정비 : 수군의 활약
수군의 활약
- 삼도수군 통합작전
- 화포 집중운용
- 거북선 응용, 정보 적극 활용
=> 삼도수군통제사 신설하여 삼도 수군 함대를 통합
이순신
- 임진왜란 준비 : 거북선 건조, 군량 확보
- 임진왜란 : 삼군 작전 주도, 연전연승, 일본 수군 과절, 한산해전 등 중요 전투 승
but, 파직
- 정유재란 : 백의종군, 삼도수군통제사 복귀, 명량해전, 노량해전 승
- 의병 봉기 : 6초부터 대규모로
의병 봉기
전쟁 초, 초유사 김성일, 김륵 등 경상도 의병 활동 지원 유도 => 당시 시민들은 의병장이 존경하는 인물이었기때문에 봉기에 참여함
- 주로 준 관군:관군과 양민의 비율이 높음, 소규모
- 관군으로 흡수
- 자신의 향촌 지역에서 주로 활동, 지형에 익숙함
- 일본의 전라도 공략 실패
강화교섭기
일본군: 왜성 구축 및 주둔, 강화교섭
- 평양성, 행주산성 패 이후 강화교섭 지속
3년간의 강화교섭 실패
- 심유경 : 고니시 휴전회담
조선의 군사력 재정비
- 조총 제작, 명나라 병법 도입 => 삼수병 체제
- 중앙군 : 훈련도감 설치, 지방군 : 속오군 체제
정유재란기
명 : 히데요시를 일본의 왕으로 책봉
칠천량해전의 패배(조선 수군 궤멸), 초기 일본군의 승세
조명 연합군의 분전과 명량해전
- 직산전투 승 : 일본군 북상 저지
- 조명 연합군의 평양성 탈환
- 권율장군의 행주대첩
- 명량해전 승 : 전세역전, 일본군 후퇴
히데요시의 죽음
- 일군, 철수 준비
- 노량해전
임진왜란의 의의
- 신분제도 변화 가속 : 공신으로 신분 상승, 노비 도주
- 재정 수입 낮음 : 경작 가능한 토지 없음, 피로인 문제
- 문화적 손실
- 충절이념 강조 : 의병세력의 약진
동북아 정세 변화
일본: 도쿠가와 막부 등장, 히데요시 세력 몰락
명 : 명의 북방, 요동 지역 통제력 약화 => 여진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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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변화 : 여진의 성장 => 후금 => 청
누르하치의 여진 통합과 후금으로 국호 변경
* 사르후 전투
명&조선 VS 후금
=> 거센 바람으로 화포 사용 불가하여 후금의 철기부대에 대패함
조선의 외교 전략
<광해군> <인조반정>
- 강성해진 후금 자극 X - 사르후 전투에서 패한 명의 모륜룡 -> 평안도 철산의 가도에 동강진 개설
-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 => 후금에 대한 협공작전 시도
=> 후금에 투항 - 명분 : 폐비(인목대비), 살제(영창대군), 무리한 토목공사
=> 김자점, 이위 등이 늑양군(인조) 추대
명의 조건부 책봉 : 자신과 함께 후금 정벌
<척화파:주전파> : <주화파>
명에 대한 의리 조선은 더이상 싸울 힘이 없다
청과 싸우자 실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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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이괄의 난
- 인조반정 당시
논공행상 불만 표출
- 초기, 인조 공주로 피신
- but, 결국 진압
정묘호란
- 홍타이지 즉위
- 영원성 전투 패해 극심한 기근, 물자부족
=> 목적 : 모륜룡 제거하고 조선으로부터 생필품 보급
- 경제 위기 탈출
정묘화약
모륜룡의 도피, 서북 지역 차지 후 조선에 화의 제의함
- 조선 : 청야입보, 전술 무력화
- 후금 : 전쟁 지속 X
=> 형제관계 성립, 조선의 엄정중립 요구
병자호란
청 vs 조선(with 명)
- 후금 = 만주 지배하며 요서 공락함과 더불어 국호 청으로 바꿈
- 조선의 춘신사들이 즉위식에서 신하의 예를 다하지 않음
=> 청군의 진격, 남한산성 포위
=> 조선, 남한산성 방어
but, 청의 강화도 함락
=> 항복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 = 홍타이지의 미완의 황제 즉위식 완결
명 < 청 => 조선은 청 중심 조공
호란의 결과
- 청과의 군신관계
- 수만명의 피로인
- 성의 신축, 수리 금지
- 청에 대한 군사적 지원 약속
- 세폐 납부
조선
- 청과의 군신관계 & 대규모 전쟁물자 조달
- 기존 포수 중심 삼수병체제 + 기병 강화
청
- 중원진출 배후 위협 제거
- 만몽한 제국 통합 상징 극대화 => 조선 굴복 : 대대적 홍보
- 명과의 전쟁에 조선군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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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 임진왜란 수군 승리 원인
당시 수군은 3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신설하여 지휘관을 한명 앉히고 삼도 수군의 함대를 통합하였고 화포를 집중 사격을 진행하는 등의 작전을 펼쳤다. 당시 뛰어난 지략가인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어 뛰어난 전술 하에 진두지휘를 통해 임진왜란에서 수군은 큰 승리들을 거둘 수 있었다. 결국 왜구를 물리치게 된 계기도 명량해전의 공이 크며 퇴각하는 일본군을 다시 노량해전에서 크게 해를 끼칠 수 있었다
- 인조반정
명분은 인목대비 폐비와 영창대군의 살제, 더불어 과도한 토목공사가 있었고 이를 가지고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인조를 왕위에 앉혔다.
이때 명이 조건부책봉을 해주는데 해당 조건이 같이 후금을 정벌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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